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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하르키우

우크라이나 북동부에 있는 제2의 도시 하르키우는 한국인에게 낯선 도시다. 유서 깊은 수도 키이우와 직항로가 연결돼 있지 않았던 만큼, 넘버 투 도시가 생소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지구 반대편 나라”라고 했던 우크라이나 하르키우는 한국과 인연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유일의 고려인 학교가 이곳에 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총 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한 이들과 그들의 후손이다. 하르키우가 6·25 전쟁 초기 국군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T-34’ 전차의 주요 생산기지였다는 점에서 악연도 있던 곳이다.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삶만큼이나 하르키우란 도시도 근·현대사에서 부침이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나치독일은 이 도시에서만 네 차례나 대규모 공방전을 벌였다. 규모가 컸던 건 1942년과 1943년 전투다.     1942년 소련은 쾌속 진격하던 독일군을 막아내기 위해 하르키우에서 선공했지만, 결국 독일군의 역습에 무너졌다. 하르키우를 빼앗긴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까지 밀렸다.   1943년에는 소련이 공격에 나섰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 40만 명을 포로로 잡은 소련이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소련이 하르키우까지 진격해 오길 기다렸다가 역습에 나섰다. 소련의 진격은 늦춰졌다. 여러 차례 공방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하르키우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하르키우는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다. 2014년 유로마이단(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요구한 시위) 당시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하르키우는 친러파와 친서방파의 대결 정국에서 친러 정치인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이기도 했다. 러시아 국경까지 불과 50㎞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러시아계 시민도 다수 거주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하르키우는 또 한 번 화마에 휩싸였다. 전쟁 초기부터 하르키우 대학교와 시청사 등이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석 달째 치열한 전투 끝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국경까지 도달한 군인들이 “우리가 해냈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하르키우가 평화를 찾길 기원한다.     한영익 / 한국 중앙일보 정치에디터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고려인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북동부

2022-05-21

[시론] 북한 코로나는 ‘정치적 재앙’

많은 이들처럼, 필자는 북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실제 상황이 됐다. 지난 12일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음을 알린 뒤 확진자·사망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전국적 확산은 시간문제이며 치명률도 2%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수십만이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떠올리는 재앙이다.   북한 정치국회의는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긴급 의약품 배포, 소독, 철저한 봉쇄 조치를 한다는 것인데, 중국 사례로 보듯 이 조치로 오미크론 확산세는 늦추겠지만 막을 순 없다. 봉쇄된 상하이 시민들은 식료품과 의약품 부족으로 참혹하게 지냈다. 그나마 식료품을 사재기할 수 있었지만 북한에선 봉쇄 조치가 긴급하게 취해진 데다 주민들이 식료품을 대량 구입할 재정적 여력도 없다.   주민에겐 인도적 재앙이고, 북한 정권엔 정치적 재앙이다. 지난 2년 국경 봉쇄로 코로나를 막을 수 있다며 백신도 필요 없다고 역설해온 북한 당국은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다.     주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면역력도 낮다. 코로나는 지방 협동농장 농민뿐 아니라 북한 정권 유지의 기반인 평양의 엘리트층도 강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 상황을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고 표현한 건 과장이 아니다. 14일 노동신문에선 “국가 안전을 믿음직하게 지켜낼 수 있다”고 했는데, 북한 정권의 안위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과 같다.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 불신이 강한 북한에선 루머가 곧 공포를 확산하고, 공포는 다시 분노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북한이 질서정연한 사회이고 주민들은 당국에 순종한다고 믿곤 한다. 그러나 2009년 섣부른 화폐 개혁을 하고 ‘돈주’의 화폐를 몰수했을 때 폭동과 시위가 일어났고, 북한 정권은 죄 없는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하고 없던 일로 되돌렸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다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사태가 당조직들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 특정 세력이 문책당하고 총살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지경을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분노한 주민들이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봉쇄명령을 어기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코로나가 북한군 내에도 확산하고 기지가 봉쇄되면 군의 반란도 일어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이를 모면하기 위해 핵실험 같은 이벤트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런 행동은 북한 정권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게 된다. 제20차 당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 코로나와 경제 침체로 골머리를 앓는 중국을 화나게 할 것이고, 국제 사회도 북한에 대한 동정심을 거둬들일 수 있다.   더욱이 북한 정권의 의도와 달리 이미 여섯 차례나 한 핵실험을 한 번 더 한다 해서 북한 주민이 크게 감동할 것 같진 않다. 주민 생명이 코로나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부족한 자원을 핵 실험에 낭비한다는 분노와 불신으로 역효과만 낼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 정권엔 최악이다. 그렇다고 북한 정권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긴 아니다.   북한 정권은 현재 위기를 풀 실마리조차 못 찾고 있다.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벨라루스에서 보듯 코로나 대응 실패로 인한 국민 분노는 하루아침에 정권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 북한은 바나나 껍질이 깔린 길을 위태롭게 걷는 주정뱅이 행보를 오랫동안 보여왔다. 지금까진 운과 우방국 도움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한 번만 잘못 밟아도 넘어질 수 있다. 정권 붕괴다. 북한은 지금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정말 크고 미끄러운 바나나 껍질 위에 있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시론 북한 코로나 코로나 대응 정권 안위 위기 상황

2022-05-20

[독자 마당]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올해로 100세를 맞으셨겠지요. 과수원집 장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옛적 선교사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한 동네의 신실한 청년을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다섯 남매를 두며 목회자의 아내로, 목회자의 어머니로, 목사 손주의 할머니로 기도와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을 경험했고 보릿고개도 겪으셨습니다. 81년에는 미국에 와 낯선 이민자의 삶도 감당하셨습니다.     마지막 기거하셨던 양로원의 생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흠뻑 받다가 아버지의  안수 기도 중에 마지막 숨을 거두어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셨습니다.     12년 전에 가셨지만 내유외강으로 한 번도 싫은 소리, 화 한 번 내지 않고 막내인 저에게 늘 자애롭게 대해 주셨습니다.   제 방 침대 앞의 어머니 사진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온유하심과 사랑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어머니의 막내사위 애들 아빠가 2년 전 코로나가 막 시작할 즈음에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갔지요. 만나 보셨는지요. 그간 긴 터널 속에서 우울감과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어머니가 계셨다면 어떤 말로 나를 위로해 주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두 아들이 옆에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고 제가 더 힘을 내게 됐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저도 모르게 어머니가 자주 부르셨던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을 불러 봅니다. 비록 가까운 곳에 안 계시지만 늘 저희 위해 기도로 응원해주실 거라 믿으며 그 사랑을 가슴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지녔고 유머가 많았던 성품을 많이 닮고 싶습니다. 오늘도 어머니와의 인연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남은 삶을 마치면 만날 때가 오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힘차게 정진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김선애·부에나파크독자 마당 어머니 어머니 사진들 할머니로 기도 안수 기도

2022-05-20

[기고] 이제는 국민이 변해야 한다

굳게 닫혔던 청와대 정문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됐다. 활짝 열린 청와대가 국민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선보이듯 활짝 열린 윤 대통령의 시대가 국민에게 밝은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 10일 한국에선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5년 동안 한국의 국정을 담당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고 대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의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민주국가인 한국에서 대통령의 교체는 매 5년마다 반복되는 행사이지만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정권교체의 주요 이슈가 대부분 경제성장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국 이후 지속되었던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이 흔들리고, 국민생활에서 미덕인 정직과 근면, 상식과 공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진영 중심으로 사분오열되는 등 국가가 위기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진보 성향의 정권은 무능과 무책임으로 사회적 분열만을 남긴 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국민이 주인이고,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정권에 이양됐다.     새 정권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파당적 이익 집단으로 전락한 정치인들의 집합인 국회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간의 진영싸움에서 장수(대선후보)간의 대결은 보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은 다수당의 오기로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승자의 진로를 방해하려고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어디서 왔는가? 국민 속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4류 정치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 아닌 내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수준을 높이든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권을 바르게 행사하여 올바른 일꾼을 뽑아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나라가 갑자기 바뀔 수는 없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도 바뀌어야 한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라”고 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을 선출한 것으로 국민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선출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초심대로 진행되어 대한민국이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국민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잘 살아보세’라는 국민운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의 의식수준과 삶의 질이다.     ‘잘 살아보세’가 풍요로운 삶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기는 했지만 ‘물질만능’이라는 퇴폐적 사고방식을 만연시키기도 했다. 개인소득 3만 달러에 10대 경제대국의 위치에 오른 지금, 한국에 필요한 국민정신은 ‘잘 살아보세’보다는 ‘바르게 살아보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 각자가 바르게 살면서 반지성주의를 타파하고, 상식과 공정이 통하고, 자유가 존중되는 새 시대를 열어가야겠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기고 국민 국민 각자 민주국가인 한국 케네디 대통령

2022-05-20

[이 아침에]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요정 같은 꽃들이 만개한 봄이다.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안개비가 내리지만 우리는 하이킹을 간다. 칠십도 넘은 하이킹 그룹 이름은 ‘원더걸스’다. 피터스 캐년 루프(Peters Canyon Loop)는 6.5마일 길이로 적당히 어려운 트레일이다. 겨자꽃과 파피꽃이 2년 전만큼은 아니어도 여기저기 피었다. 자연 그대로의 흙길을 걸으며 야생의 상태를 즐기기에 좋다. 50에이커가 넘는 큰 저수지가 물이 말라 한쪽은 바닥을 드러냈고 호수 옆은 쩍쩍 갈라졌다.     담수 습지 저수지는 플라타너스, 검은 버드나무, 미루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 다람쥐, 사슴, 개구리, 뱀, 살쾡이, 코요테, 주머니쥐, 너구리, 도마뱀 등 양서류와 포유동물, 파충류 등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전체 공원 면적은 340에이커로 이렇게 거대하고 환경친화적인 공원이 집 가까이 있다니 감사한 일이다. 트레일은 경사가 심한 고갯길을 걸어야 하는 어려운 코스도 있고 쉬운 코스도 있어 저마다 알맞은 트레일을 찾아 걷는다.   산꼭대기의 힘든 코스를 15년 전부터 다녔지만, 요즘은 발이 편치 않아 쉬운 코스를 걷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산꼭대기를 선택해서 걸었다. 이스트 릿지 뷰 트레일은 피터스 캐년과 주변의 경관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어서 아침 일찍 걷는 우리가 선호하는 코스다. 이곳은 나무 그늘이 거의 없어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직선 경사로는 멀리서 보면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이킹하는 동안 살림의 지혜와 처세술을 나누다 보면 우린 여전히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나이 들면 옳은 말을 해주는 지혜롭고 선한 친구가 더없이 귀하다. 삶의 아픔을 얘기하면 “시냇물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뾰족한 돌멩이를 여유 있게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섭섭함을 털어놓으면 “나의 처지만 이해하라고 고집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도 공감해 주자”고 조언한다. 공감해주는 친구는 보석 같다. 얼마나 귀하면 “공감은 정신의 심폐소생술”이라 했을까?     평지를 걷다가 쉼터에서 간식을 먹고 또 걷다 보면 호수의 끝을 만난다. 호수를 끼고 돌아가면 서서히 경사진 곳을 오른다. 오르락내리락 능선를 따라 있는 큰 집들은 철망으로 담장을 쳤고 부겐빌레아가 그 위를 덮었다. 한 폭의 수채화다.     두 번째 경사를 올라가면 또 다른 정상이다. 사방은 병풍을 친 듯 산봉우리 풍경은 그대로 산수화다.     내려가는 길은 선인장 가득한 좁은 길이다. 선인장 사이를 걸으며 쉽지 않은 우리 인생사를 뒤돌아본다. 삶은 내가 존재해야 하기에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자신을 부정하고 희생으로 관대함을 베푸는 것이 너무 어렵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나에게 위로와 이해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서로 이해하고 원망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힘이 생긴다.     삶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가. 내일 아침에 ‘새로운 날’이라고 기뻐하며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지. 이럴 때 느끼는 자유는 어깨에 날개를 단 듯 마음이 가볍다. 사랑은 책임과 의무가 담긴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체여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자연 지혜 하이킹 그룹 버드나무 미루나무 직선 경사

2022-05-20

[칼럼 20/20] 인종주의와 총기규제

미국적인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두 가지 문제는 ‘인종’과 ‘총기’다. 인종 문제는 흑인 노예를 데려온 ‘원죄’로 지금도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다인종 국가 미국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됐다. 총기는 규제의 어려움이 문제다. 총기 소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돼 정부 제재를 벗어나 있다.     인종주의와 총기문제는 각각 미국 사회의 병폐로 작용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둘의 결탁이다. 인종주의자의 손에 총기가 쥐어진 경우다.     14일 뉴욕주 버펄로 마켓에서 18세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했다. 용의자 페이튼 젠드런은 자신을 백인우월주의자·반유대주의자라고 밝히고 ‘흑인을 많이 죽이겠다’고 공언했었다. 다른 마켓에서도 흑인 총격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11일 댈러스 한인 미용업소에서도 무차별 총격이 발생했다. 경찰은 인근 아시안 업소 4곳도 피해를 당했다며 인종 증오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체포된 용의자 제레미 테론 스미스는 아시안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인종주의에 총기가 합쳐지면 대량살상의 개연성은 커진다. 범행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증오하는 인종의 다수를 겨냥한다. 대량살상(Mass Killing)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총기범죄기록보관소(GOA)의 기준인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를 대량살상으로 분류한다. 이전에 발생한 인종 관련 총격은 대부분 대량살상의 참극으로 끝났다.     인종 갈등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총기는 범죄의 주요 수단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2019년 통계에서 미국인 10만 명당 4.38명이 총기로 피살됐다. 총기를 사용한 자살과 총기 오발로 숨진 사고를 포함하면 10만 명당 12.21명(2017년 기준)으로 높아진다. 미국의 총기살해 비율은 세계 전체 순위에서는 낮지만 선진국 중 단연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한다. 2016년 기준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총기로 사망했고 그중 미국은 3만7200명이 숨져 브라질 다음으로 많다. 총기 사망자 톱10에 선진국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최근 수년 사이 인종주의와 총기난사가 결합한 대형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19년,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히스패닉을 증오하는 백인 남성이 총기를 휘둘러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성명서를 통해 히스패닉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는 ‘인종 투쟁’을 외치는 용의자의 총에 9명의 흑인이 숨졌다.     이전 미국의 인종 갈등은 흑백간의 문제였다. 하지만 라틴계와 아시안 등의 이민자가 늘어 양상이 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시작하면서 아시아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아시아태평양계 단체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증오범죄가 3.5~4배 폭증했다. 지난해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으로 한인을 포함해 8명이 사망했다. 백인 인종주의자의 아시안 증오가 범행동기였다.     총기 반대론자는 총기 소유가 범죄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연방수사국(FBI)이 2019년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행 도구를 조사한 결과다. 총 1만3922건 중 1만258건에서 총기가 사용됐다. 4명 중 3명이 총기에 목숨을 잃었다.     버펄로 참극으로 인종주의자의 증오범죄에 비난이 거세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인종주의와 폭력은 혐오스럽고, 미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범행의 도구가 됐던 총기 규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불식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인종주의자의 손에 총기가 들려지지 않게라도 해야 한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인종주의 총기규제 인종 증오범죄 총기 사망자 총기살해 비율

2022-05-19

[이 아침에]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요즘 남가주 주택가나 거리에는 보라색 자카란다꽃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늦은 봄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뽐내는 자카란다는 멀리서 보면 비밀의 성처럼 신비한 모습을 연출한다. 미국에 와서 마주한 자카란다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다 이름도 어려워 외우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20여년을 보다 보니 이제 무심코 길을 지나다가 자카란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걸 보면 ‘아. 벌써 5월이구나’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봄이 끝나가나 싶어질 때쯤 주택가나 거리 골목 어귀에서 보라색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자카란다는 왠지 우리나라의 철쭉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봄꽃은 남쪽의 매화나 샛노란 산수유부터 시작돼 북상하며 진달래 개나리가 만개하고 벚꽃이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며 마무리된다. 여름이 시작되나 싶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철쭉꽃이 뒤늦은 향연을 펼친다. 조금 높은 산의 산철쭉은 6월경 절정을 이루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어렸을 때는 이른 봄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 꽃잎을 따먹고 놀기도 했던 터라 좀 늦은 봄에 피어나는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꽃을 따 먹었다가 배가 아파 고생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참꽃이라 불리지만 철쭉 꽃잎에는 독성이 있어 개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같이 조금 일찍 피어나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들과 달리 뒤늦은 시기에 홀로 피어 묵묵히 빛을 발하는 철쭉은 파피꽃이나 유채꽃이 지고 나서 보라색 향연을 펼치는 자카란다와 겹친다. ‘봄꽃’의 화려한 영광은 다른 꽃들에 내어주고 사람들에게 잊혀 갈 때쯤 피어나 은은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그런 점이 서로 닮았다.    사람들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이나 조직 사회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승승장구하며 높은 자리에 올랐다가 이른 나이에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빛나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오래도록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다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더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는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늦게까지 빛나지 않아도 자기 몫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주위에 많은 이들이 따르는 걸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인 이민사회의 교회나 조직에서도 화려한 영광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조직이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감투싸움이나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민사회의 부끄러운 모습과는 다르다. 말은 쉽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나의 노년의 삶을 그려본다. 화려한 영광도 없었던 젊은 시절의 삶이었지만 이제 늙어서라도 자카란다처럼 철쭉꽃처럼 은은하고 묵묵하게 빛을 발하는 그런 남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송훈 / 수필가이 아침에 진달래 개나리 진달래 꽃잎 보라색 향연

2022-05-19

[독자 마당] 잊어버린 한국말

요즘 눈이 건조해서 불편하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여기저기서 고장 신호가 나온다. 일기장을 펴보니 작년 8월에 안과 진료를 받았다.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안과 병원 예약을 하고 얼마 후 병원을 찾았다.     내 바로 앞에서 팔순이 넘어보이는 노부부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의사가 파일을 들고 나와 노부부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그런데 남자 환자가 자기소개하는 소리가 진료실 바깥까지 들렸다. 미국 생활이 50년이 넘었고 미국 주류사회에서만 생활해 왔기 때문에 한국말이 불편하고 서툴다고 말한다.     부인이 옆에서 자신의 남편은 집에서도 영어로 이야기해서 영어를 잘 못하는 자신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말투가 남편이 한국어를 잘 못해 이해해 달라는 뜻보다는 영어를 능통하게 잘 한다는 자랑이 더 느껴졌다. 마치 미국에 살면 영어를 잘하고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모든 말을 한국어 반, 영어 반으로 했는데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렸다고 당당히 말하는 태도가 귀에 거슬렸다.     그렇게 한국말 사용이 불편하다면 영어를 쓰는 의사에게 가면 될 일이다. 한국 의사를 찾아와 자신이 한국말 못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한국어를 잊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전혀 창피하지 않다는 태도와 대신 영어를 잘 하면 된다는 식의 말은 이해할 수가 없다.     한국어는 이제 세계의 언어가 되고 있다. 타인종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이민자가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 떳떳한 일은 아니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 잘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것도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이산하·노워크독자 마당 한국말 한국말 사용 대신 영어 한국 의사

2022-05-19

[문화 산책] 예술로 승화된 아픈 기억들

내가 영화 ‘사코와 반제티’를 처음 감상한 것은 50년 가까이 전인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오랜 옛날 일인데도, 영화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새내기 극작가였던 내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 모양이다.   ‘사코와 반제티’는 100여년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가난한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마녀재판’이며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엄청난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특히 이민자들에게는 이야기하는 바가 큰 영화다. 사건을 간추리면 이렇다.   1920년 4월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한 구두 공장에서 경리담당 직원과 경비원이 총에 맞아 죽고, 현금 1만6000달러가 털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뒤 이탈리아 이민자인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가 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사코는 구두수선공이었고, 반제티는 생선장수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이민자였다.   경찰은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두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갔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이고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한 무정부주의자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심각한 물가상승과 빈부격차, 과격해진 노사분규,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진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테러가 일어나자 정부로서는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무고한 사코와 반제티가 걸려든 것이었다. 따라서 이 재판은 ‘사상재판’의 성격을 띠며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했고 증인도 있었고 제3자가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으나 이들에게 공정한 재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921년 7월14일 두 사람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편견과 적개심에 근거한 불공정한 재판에 분노하는 항의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파리에서는 미국 대사의 집이 파괴되고 구명운동을 벌이던 시위대에 폭탄이 터져 2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였다.   버트런드 러셀, 아인슈타인, 시인 아나톨 프랑스, 마리 퀴리, 이사도라 덩컨 등 세계 지성인들도 ‘최악의 사법살인’이라고 항의하며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러자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1927년 8월23일 두 사람은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제공된 스프와 고기, 토스트, 차 등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당당하게 죽었다. 처형 당시 사코는 33세, 반제티는 36세였다. 사형집행으로 엄청난 항의가 뒤따라 파리, 런던 등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사형 당한 지  30여년이나 지난 1959년 진짜 범인이 나타나자 그제야 진실이 밝혀지고 이들에게 사면이 제안됐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뒤인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사코와 반제티의 무죄를 확인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데 50년이나 걸린 것이다.   4·29 30주년을 맞으며 미술, 문학 등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이민자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 사건과 영화 장면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편견과 의혹이 가져온 폭력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치유의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은 그림과 노래로도 명예가 회복됐다. 미국화가 벤 샨이 그린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시리즈 23점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겪은 4·29 아픔도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오래도록 남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예술 승화 매사추세츠 주지사 세계대전 참전 매사추세츠 보스턴

2022-05-19

[J네트워크] 방탄소년단과 병역법

지금은 ‘병역법’에 통폐합된 ‘병역의무특례규제에 관한 법’, 일명 ‘병특법’이 처음 제정된 건 1973년이다. 법 1조에 나오듯 ‘군 소요 인원의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든 법이다.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한국과학원(현 카이스트) 학생 ▶군수산업 종사자 ▶기간산업체 종사자, 그리고 학술·예술·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로 정했다. 기술·재능을 가진 젊은이를 해당 분야에서 활용하려고 ‘군대를 빼주는’ 법이다.     당시 우리가 가진 자원이라고는 인력자원이 전부였다. 제정 당시 군복무 기간은 33개월(육군). 정말 ‘군대 3년’이던 시절이다. 국가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병역특례라는 ‘수단’을 쓴 거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9월 개막 예정이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연기됐다. 뒤따라 나오는 관심사는 온통 선수, 특히 축구·야구선수 병역 면제 차질 얘기다. 두 종목이 특히 주목받는 건 연령 제한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축구는 올림픽처럼 23세 이하, 야구는 24세 또는 프로 3년 차 이하 선수만 출전한다. 야구는 지난해 KBO가 그렇게 정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올해 열렸다면 출전했을 일부 선수가 내년에는 출전할 수 없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도 관심은 온통 손흥민의 금메달 획득 여부에만 쏠렸다. 1992년생 손흥민이 더는 입대를 미룰 수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방탄소년단(BTS) 뉴스는 온통 군대 얘기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발 벗고 나서 “(BTS가) 병역 의무 이행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는 분명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지난 4일 황희 전 문체부 장관)이라고 총대를 멨다.     BTS 소속사 하이브 역시 대놓고는 아니지만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분위기다. 병역 문제에서 대중예술이 순수예술(클래식·발레·무용·국악 등)에 비해 차별받는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그 전부터도 BTS 군대 얘기가 있었는데, 멤버 맏형인 1992년생 진(김석진)이 더는 병역을 미룰 수 없게 된 게 논의를 촉발했다.   현재 병역법 2조 10의 3항은 ‘예술·체육요원이란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을 위한 예술·체육 분야의 업무에 복무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자격 기준과 복무 형식은 시행령과 규칙으로 정하는데, 어디에서도 법의 ‘목적’은 찾을 수 없다. 사실상 이들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수단’으로 전락한 형국이다. 요즘 군복무 기간은 18개월(육군 기준).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을 말하기에 긴 시간도 아니다. ‘병특법’이 처음 생긴 50년 전과 비교해 모든 게 변했다. 더는 예술·체육요원의 군 복무가 그들의 업적보다 더 큰 관심사여선 안 된다. 병역법, 이번에는 꼭 고치자. 장혜수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J네트워크 방탄소년단 병역법 현재 병역법 야구선수 병역 최근 방탄소년단

2022-05-19

[전문가 기고] 지구온난화와 ‘잡종’ 곰

2006년 캐나다 북서 지역에서 사냥꾼이 북극곰으로 추정되는 동물을 사살했다. 그런데 그 동물은 이전에 야생에서 보고된 적이 없는 동물의 형체였다. 북극곰의 특징은 흰털을 가지고 있는데 그 동물은 긴 발톱, 둥근 등근육, 평평한 안면과 갈색털을 지닌 갈색곰(그리즐리 베어)의 특징을 가졌다. 전형적인 북극곰도 또는 갈색곰의 형상도 아니었다.     사냥꾼이 캘리포니아 대학의 전문가에게 그 동물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동물임이 밝혀졌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북극곰도 갈색곰도 아닌 ‘잡종(hybrid)’이었다. 이는 야생에서 북극곰 암컷과 수컷 갈색곰 사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잡종 곰은 피즐리 (pizzly: 수컷 polar + 암컷 grizzly) 또는 글로라 grolar: 수컷 grizzly +암컷 polar)라고 하며 드물게 야생에서 발견된다. 잡종 곰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2017년 과학저널 연구논문은 이들 잡종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임을 밝혔다. 북극곰 암컷 한 마리와 갈색곰 수컷 두 마리 사이에서 8마리의 잡종 곰이 태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지구온난화로 극지의 기온 상승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갈색곰은 기온에 대응해 활동 영역을 북쪽으로 확장하고 있다. 북미 고위도의 최북단 산맥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한대산림, 북쪽은 툰드라로 구분된다. 이제까지 갈색곰의 최북단 활동 지역은 이 산맥의 남쪽 사면 아래였다. 그런데 눈으로 덮인 남쪽 사면에서 곰으로 보이는 동물이 자주 목격됐다. 그 곰은 흰색과 갈색의 얼룩무늬 털을 갖고 있다. 이는 월동을 할 수도 있는 갈색곰의 특징과 한겨울에도 사냥을 할 수 있는 북극곰의 특징을 지닌 잡종이다.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잡종이다.   반면 북극곰은 극지온난화에 따른 해빙의 급격한 감소로 물범을 사냥할 기회를 잃어 버리면서 연안에서 내륙으로 사냥감을 찾는 빈도가 점차 늘어간다. 더욱이 해빙의 감소는 북극곰에게 심각한 생존 스트레스를 주어 사망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북극곰이 보호종으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갈색곰의 활동 영역 확장의 증거로 북극해 연안에 고래 사체를 두는 곳에서 북극곰과 갈색곰이 목격됐다. 이들의 짝짓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 같은 잡종의 출현은 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1990년 한 과학자는 북극 원주민 사냥꾼의 집 벽에 걸려 있는 이상하게 생긴 고래류의 두개골에 주목했다. 두개골은 흰돌고래(beluga)도 일각고래(narwhal)도 아닌 중간 위치의 모양이었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일각고래와 흰돌고래의 잡종 두개골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북극해에서 흰돌고래 무리 속에 일각고래 한 마리가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인공위성으로 관측돼 잡종 탄생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일반적으로 잡종은 흥미로운 변형처럼 생각되지만 진화론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잡종의 경우 생존 능력과 번식 능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서식지에서 적응한 종보다는 잡종이 대부분 더 건강해 환경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든 것들에게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극지온난화에 따른 환경변화로 육상과 해양 고등 동물에서 잡종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변화한 환경에 대한 적응 유전자가 잡종이 순수 종에 비해 휠씬 발달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지구온난화는 고등동물 활동 영역을 점차 북쪽으로 확장시켜 잡종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전문가 기고 지구온난화 잡종 잡종 두개골 북극곰 암컷과 잡종 탄생

2022-05-18

[이 아침에] ‘오빤 강남 스타일’을 신고해야 하나?

밤 10시가 넘었다. 별은 총총히 빛나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이어 웃음소리와 시끄러운 음악은 계속 들렸다. 이사 온 지 두어 달 된 길 건너 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파티는 곧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했지만 요란한 음악이 귀에 거슬렸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우리 집 길가도 주차된 차로 복잡했다.     ‘그래 이사 와서 처음 하는 파티 같으니까, 9시까지는 참아 주자’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9시가 넘었다. ‘늦은 밤이니까, 10시면 끝날 거야. 끝나겠지’하며 기다렸지만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화가 나서 911에 전화하려는데 난데없이 한국말이 들렸다. 오빤 강남스타일. 성능 좋은 스피커를 통해 ‘오빤 강남 스타일’ 노래가 잡음 없이 들렸다. 곧 말춤을 추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싸이가 보이는 듯했다. 911 오퍼레이터가 “어떤 응급상황이죠?”하고 “지금 무슨 노래가 나오냐?”라고 물을 때 싸이의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고 할 순 없었다.     국가 기밀을 파는 것도 아니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헤이. 섹시 레이디. 오빤, 오빤 강남 스타일’을 노래하며 열심히 말춤을 추는, 2012년에 빌보드 핫 100에 2위를 7주씩이나 한 싸이를 고발할 순 없었다. 더욱이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진 나이기에 참아야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이 경우에는 911이 아니라 차라리 동네 경찰서로 직접 전화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하긴 어차피 동네 경찰이 출동할 것이니, 그것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동네 경찰서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찾고 있는데 10시 반이 넘었다.     순간 요즘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는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렸다. 이 시간이 아직 초저녁인 딸아이에게 지금 나오는 노래는 누가 부르냐고 물었더니, BTS라고 했다. “뭐라고?”에 이어 “나 원 참” 소리가 절로 나오며 말을 잃었다.     전화 걸던 나의 손이 멈칫하자, 남편이 BTS는 누구냐고 물었다. 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아들뻘 되는 아이돌 스타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 가수들이라고 했다.     남편이 기가 막혀 하는 얼굴을 하면서 옆에 앉았다. BTS, 방탄소년단은 2018년에 LOVE YOURSELF 轉 ‘Tear’를 발매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했으며, 또한 한국 음악 그룹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기도 한 그룹이다. 한류가 대세는 대세다.   어느덧 11시가 되었다. 911 오퍼레이터에게 ‘BTS’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린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기다려야만 했다. 누가 전화했는지, 드디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스피커로 파티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음악이 멈추자, 소란하던 세상이 다시 고요해졌다.     미국에서 산 연수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나와 아주 어려서 한국을 떠난 1.5세 남편. 우리의 두고 온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을 테스트한 날이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스타일 강남 강남 스타일 동네 경찰서 한국 음악

2022-05-18

[시조가 있는 아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무명씨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섰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 손으로 흰 구름 가리키고   말 아니코 간다   -청구영언 진본   그리운 탈속의 경지     작가를 알 수 없는 이 시조는 문맥을 초월한 즉흥적 직관적 세계와 만나게 한다. 즉 다리 위에 중이 가니까 물 아래 그림자가 지는 게 아니라, 물 아래에 그림자가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모순 어법이지만 자연을 앞세우고 인간을 뒤로 세운 것이다.   저 스님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어보아도 말 아니하고 손으로 흰 구름을 가리키니 그야말로 탈속의 경지라고 하겠다. 이 스님은 혹시 안거(安居)에 들 수행처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거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생긴 것인데, 인도에서는 우기(雨期)에 땅속의 작은 동물들이 기어 나오기 때문에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그것들을 밟아 죽일 염려가 있고 또 각종 질병이 나도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기의 3개월은 다니는 것을 중지하도록 설하신 것이 안거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혹서기와 혹한기가 있는 나라여서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를 하안거, 시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를 동안거로 해서 스님들이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시조가 있는 아침 그림자 무명씨 아래 그림자 정월 보름 석가모니 부처님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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